감각이 깨어나는 공간이 열립니다 · 2026년 늦가을 논현동 | 오픈 소식 받기

루메저널을 쓰는 이유

현재를 남기다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

매달 세 편의 저널을 씁니다. 주로 늦은 밤에 글감이 떠오릅니다. 가끔은 이걸 언제까지 쓰나 싶기도 합니다.

월 세 편으로 정한 데에는 거창한 전략이 없습니다. 사이트를 만들다 보니 저널은 게시판보다 카드형이 정돈되어 보였고, 카드형은 한 줄에 세 칸이 딱 맞았습니다. 두 편씩 올리면 날짜가 이렇게 어긋납니다.

9월8월8월 7월7월6월 6월5월5월

보기 싫었습니다. 세 편이 완성되면 이렇게 됩니다.

7월7월7월 6월6월6월 5월5월5월

아주 평화로운 배열입니다. 그래서 세 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만 쓰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저널에 맞게 다시 다듬고, 사진을 고르고, 사이트에 얹고, 화면을 확인하고, 루오·루브·루제를 붙이고, 모바일에서 이상하진 않은지까지 보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일이 됩니다.

루메저널이라 적힌 신문과 노트북이 놓인 책상
매달 세 편, 저널은 그렇게 한 편씩 쌓입니다.

두 대목

그렇게 조금 흔들리던 차에, 한 책에서 두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일리의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입니다.

하나. 브랜드의 비주얼은 눈에 보이니 이미지나 영상으로 나중에라도 붙잡을 수 있지만, 개념과 텍스트는 관리를 놓는 순간 쉽게 휘발된다는 것. 생각해보니 맞습니다. 제품은 남습니다. 패키지도, 공간도, 사진도 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했는지, 그때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골랐는지는 놀랄 만큼 빨리 잊힙니다.

둘. 미래의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 이야기. 그는 앞으로 차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기보다, ‘사람이 탈 수 있는 것’과 ‘이동이 가능한 것’ 이 둘만 남기고 ‘자동차’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지운다는 것. 형태를 먼저 정하지 않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부터 붙든다는 뜻입니다. 그 대목에서 루메오브제(LUME OBJET)가 떠올랐습니다.

루메의 다음은 무엇인가

씨알, 여운, 여운취를 정하면서 우리도 종종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루메의 다음 오브제는 뭘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초콜릿을 만들었으니, 다음은 향일까, 또 다른 무엇일까.

그런데 질문을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사람이 자기 감각을 알아차리게 하는 계기는, 앞으로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질문을 바꾸자 답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초콜릿일 수도, 향일 수도,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루메가 다루려는 것은 초콜릿 자체보다 감각이고, 그 감각을 알아차리게 하는 일이니까요.

가까운 다음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초콜릿 다음’이어서가 아니라, 같은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입니다. 그다음, 또 그다음의 루메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쓰다가 발견하는 것

저널을 처음 만들 때는, 신생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고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 설명하는 곳이라 여겼습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남겨두면, 언젠가 우리를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가치 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쓰다 보니 기능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쓰다가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예전 글을 다시 읽다가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제품 이야기에도, 공간 이야기에도, 사람들의 반응에도 자꾸 같은 것이 나타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언젠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널은 브랜드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과, 그 사이에 정해진 생각을 기록하는 곳인 동시에, 아직 정해지지 않은 다음을 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여전히 모르는 것은 많습니다. 이 글이 얼마나 읽힐지,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일하다 생긴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해두면, 언젠가 “루메의 다음은?” 하고 물을 때 답의 일부가 이미 그 안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세 열을 맞추려고 시작한 월 세 편인데, 쓰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걸 계속 써도 되나 싶다가 이렇게 또 한 편을 남겼습니다.

저널은 현재를 남기다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참고 · 김일리,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