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손이 먼저 움직인다
많은 사람의 하루에는 비슷한 장면이 있다. 아침을 적당히 먹고 오전 일을 하다 보면 11시쯤 배가 고파진다. 이건 대체로 ‘점심을 달라’는 위장의 신호다. 문제는 오후 3~4시다. 점심을 거른 것도, 아침부터 굶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머리가 멍해지고 입이 심심해지는 신호가 찾아온다. ‘당이 떨어졌나’ 싶은 느낌.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이 감각은 꽤 자주 반복된다.
그럴 때 손이 먼저 움직인다. 책상 위 초콜릿, 간식바의 과자, 누군가 사 온 쿠키 한 조각, 탕비실 서랍의 믹스커피. 우리는 그것을 먹으며 “당 보충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루메는 여기서 한 가지를 묻는다. 이 신호는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걸까. 정말 배고픔일까, 아니면 지친 몸이 보내는 다른 신호일까.
오후라는 이상한 시간대
직장인의 오후는 묘한 시간이다. 업무 시간으로 보면 오전은 세 시간 남짓, 오후는 최소 다섯 시간. 오전에도 많은 일을 쳐냈는데, 오후가 되면 미뤄둔 판단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며 진짜 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후는, 몸은 오전보다 지쳤는데 머리는 더 선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눈은 더 피로한데 모니터는 더 오래 봐야 하고, 감정도 소진됐는데 말투는 여전히 괜찮아야 한다. 이때 가장 쉽게 손에 잡히는 것이 단맛과 커피다.
단맛은 빠르다. 커피도 빠르다. 둘 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입에 넣는 순간 머릿속 버튼이 다시 켜지고, 즉시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러나 그 빠른 답이 몸의 장기적인 리듬을 조금씩 깨뜨린다는 것도, 습관이 무섭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당과 카페인은 언제나 너무 빠른 답이다.
오후의 허기가 밤까지 밀고 갈 때
오후의 허기가 거기서 끝나고 건강한 저녁으로 회복된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보통은 그날 밤까지 이어진다. 오후에 어정쩡하게 채운 입은 저녁을 밀어내고, 밀린 저녁은 밤의 자극을 부른다.
아침 스몰토크에서 “어젯밤에 치맥을 했다”는 말은 낯설지 않다.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 몰려오는 피로, 제대로 먹지 못한 저녁의 빈자리, 강한 맛에 익숙해진 입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순간. 사람들은 치킨을 시키고, 라면을 끓이고, 맥주를 꺼낸다.
가끔 한 번은 괜찮다. 문제는 반복될 때다. 오후의 허기 하나가 저녁을 밀어내고, 밀린 저녁이 밤의 자극을 부르고, 밤의 자극이 다음 날 아침의 몸을 무겁게 만든다. 그렇게 하루의 리듬이 조금씩 무너진다.
허기는 몸 안에서만 오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태를 오래전부터 단순한 식욕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감정적 섭식(emotional eating)에 관한 연구들은 사람이 배고픔뿐 아니라 스트레스, 불안, 우울, 지루함 같은 감정 상태에 반응해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음식에 대한 갈망은 에너지 부족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1]
음식은 눈으로도 온다. 눈앞의 간식, 옆자리의 커피, 동료가 열어둔 디저트 상자, 배달앱의 팝업, 편의점 진열대의 조명. 이런 단서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에게도 먹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음식 단서 반응성(food cue reactivity)과 갈망을 다룬 메타분석은, 음식 단서에 대한 반응이 실제 섭식 행동이나 체중 변화와도 관련될 수 있다고 본다.[2]
그러니까 허기는 늘 몸 안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화면에서 오고, 냄새에서 오고, 책상 위 과자 봉지에서 오고, 오후의 피로에서 온다.
‘가짜 허기’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그렇다면 ‘가짜 허기’라는 말은 조금 조심해서 써야 한다. 가짜라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분명 몸 안에서 일어난 신호다. 다만 그 신호가 꼭 ‘밥을 달라’는 뜻이 아닐 수 있다.
- 어떤 허기는 쉬고 싶다는 말이다.
- 어떤 허기는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 어떤 허기는 입 안에 자극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어떤 허기는 오늘 너무 많은 판단을 했다는 말이다.
- 어떤 허기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하루에 대한 작은 보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루메는 가짜 허기를 의지력 부족의 증거로 보지 않는다. “또 먹었네, 참을성이 없네, 왜 이렇게 단 걸 찾지, 커피를 세 번째 마시네” —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전에, 한 번쯤 다르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참지 않고, 더 정확히 읽기
마음챙김 식사(mindful eating)에 관한 연구들은 먹는 행위를 억제나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먹기 전과 먹는 동안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몸의 신호와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마음챙김에 기반한 개입이 감정적 섭식, 폭식, 외부 자극에 의한 섭식 행동을 다루는 방법으로 연구되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3]
그러니 중요한 것은 먹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정확히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후에 허기가 올라올 때, 우리는 작은 질문 몇 개를 해볼 수 있다.
- 이것은 배가 비어 있다는 신호일까, 그냥 지금 뭔가를 먹고 싶은 걸까.
- 어차피 움직여 무언가를 먹을 거라면, 먼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셔볼 수 있을까.
- 머리가 지친 걸까. 잠깐 눈을 감고 멈춰볼까.
- 무언가를 씹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무엇을 먹어볼까.
대답이 늘 분명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집어 먹게 된다. 일하다 보면 그런 섬세한 질문을 할 여유가 없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순간, 허기는 조금 천천히 움직인다. 습관적으로 뻗던 손이 잠깐 멈추고, 봉지를 뜯기 전에 상태를 한 번 돌아보고, 커피를 마시기 전에 물을 한 모금 마시는 것. 그 작은 멈춤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루메가 관심을 두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허기를 없애거나 식욕을 억제하거나 몸을 통제하는 방향보다, 허기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신호를 다시 읽게 하는 작은 의식. 몸이 신호를 보낼 때 자신을 조금 더 정확히 읽는 것. 흐트러지기 전에 잠깐 멈추게 하는 것. 억지로 참는 일이 아니라 습관처럼 손이 갈 수 있는 것. 오후의 입은 달래되, 저녁의 리듬까지 망가뜨리지 않는 것.
나는 정말 배고픈 걸까
허기는 늘 나쁜 것이 아니다. 허기는 몸이 살아 있다는 신호다. 다만 모든 허기가 같은 곳에서 오지는 않는다.
- 어떤 허기는 밥을 달라고 말하고,
- 어떤 허기는 잠을 달라고 말하고,
- 어떤 허기는 커피보다 휴식을 달라고 말하고,
- 어떤 허기는 오늘의 내가 너무 애썼다고 말해준다.
오후의 허기가 다시 찾아오면, 우리는 아마 또 무언가를 집어 먹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 다르게 물어볼 수 있다. 먹고 싶은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조용히 물어보는 일.
나는 정말 배고픈 걸까. 아니면 내 안의 리듬이 잠시 흐트러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