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은 것은 성분표가 아니었다
시장조사를 위해 제품을 모았다. 온라인에서, 매장에서, 해외에서. 잘 팔린다고 알려진 것들을 골랐다.
목적은 분명했다. 맛과 제형이었다. 우리가 넣을 성분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확인하려던 것은 다른 쪽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단단한지, 씹히는 느낌은 어떤지, 입 안에 무엇이 남는지.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손이 가는지, 다 먹고 없어진 뒤에도 생각나는지.
제품의 속을 아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건강기능이나 이너뷰티를 표방하는 카테고리라면 성분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채워져 있으리라 여겼다. 성분은 전제였고, 맛과 제형이 과제였다.
우리가 풀어야 했던 문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과제가 있었다. 몸에 좋다는 채소와 베리류를 한자리에 모았더니 지나치게 건강한 맛이 났다. 풀 냄새가 나고, 딱딱하고, 지금 공정에서 만들 수 있는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좋은 재료를 모으는 일과,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달랐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손이 가지 않으면 몸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제품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 씹히는 감각, 삼키기까지의 시간, 하루 한 번 꺼내 먹는 번거로움까지 — 궁금했다. 우리가 시장조사를 시작한 이유였다.
앞면의 단어와 뒷면의 단어
앞면에는 건강한 단어가 많았다.
이너뷰티, 채소, 샐러드, 클린, 레몬, 비타민, 식이섬유.
뒷면에는 다른 단어들이 있었다.
덱스트린과 말토덱스트린, 구연산, 합성향료, 감미료, 혼합제제, 이소말트, 가공유지, 팜유, 각종 과일향, 스테비올배당체.
앞면의 단어는 우리가 무엇을 기대해도 되는지를 말했고, 뒷면의 단어는 그 기대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말했다. 두 문장 사이의 거리는 거짓말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없는 것처럼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의 뒷면을 지적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남은 것은 특정 제품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이제부터 무엇을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앞면은 그 제품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말한다.
뒷면은 실제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말한다.
그래서 뒷면 쪽을 먼저 보기로 했다.
이유 없는 성분은 없다
뒷면에 적힌 단어들이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지고 판매될 것이다. 가공식품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맛의 이유. 제형의 이유. 보관과 유통의 이유. 비용의 이유. 그리고 어쩌면, 건강과는 조금 멀어지는 이유들.
우리가 살펴본 것들 중에는 좋은 것을 최선을 다해 넣은 것처럼 보이는 제품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 뒷면 앞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만드는 사람이 어디까지 버텼고 어디에서 물러섰는지가 원료명 순서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복잡해졌다. 뒷면을 읽는 일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읽는 일이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멈추면 이 글은 남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예외로 둘 수 없다.
우리도 언젠가 맛의 이유로, 제형의 이유로, 보관과 유통의 이유로, 비용의 이유로 타협해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될까. 조금은 두렵다.
그렇다고 호기롭게 좋은 것만 넣고 비싸게 팔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말은 선언으로는 근사하지만, 매일의 공정 앞에서는 자주 무력해진다.
뒷면을 읽는 눈은 남을 향할 때보다 우리를 향할 때 훨씬 불편하다. 언젠가 우리의 뒷면에도 누군가가 낯설게 읽을 단어가 적힐 수 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단어를 작게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단어가 거기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우리가 무엇을 왜 바꾸었는지를 기록해 두기로 했다.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보다, 타협을 숨기지 않겠다는 약속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정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뒷면부터 쓴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것은 식물성 원물과 후추를 각각 초콜릿으로 감싼 오브제다. 감싼다는 말에는 늘 위험이 있다. 감싸는 것으로 무엇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싸는 이유를 매번 다시 묻는다. 먹기 위해 감싸는 것인지, 보기 좋으라고 감싸는 것인지.
뒷면들을 마주하고 더욱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될 수 없다.